여사제 타프티는 우리에게 아주 기묘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보통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물리적인 위치를 답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방 안에 있어요"라거나 "공원을 걷고 있어요"라고 말이죠. 하지만 타프티의 관점에서 볼 때, 깨어 있지 못한 대부분의 인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매 순간 '두 개의 스크린' 중 한 곳에 완전히 함몰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지적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현실이라는 거대한 영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진정한 '나'를 되찾을 수 있는지 깊이 있게 나누어 보려 합니다. 바딤 젤란드의 시리즈를 섭렵하며 이 책을 읽었을 때, 저에게 가장 큰 충격과 동시에 환희를 주었던 개념이 바로 이 '이중 자각'이었습니다. 트랜서핑이 거울의 원리를 설명했다면, 타프티는 우리가 그 거울 속에 빠져 죽지 않도록 멱살을 잡아채 끌어올리는 듯한 강렬함을 선사합니다.
1. 이중 자각의 강력한 도구: 손글씨로 새기는 "나는 나를 본다"

제가 타프티 3장 '꿈속에서의 산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정성을 들인 일은 바로 수첩을 꺼내 그 핵심을 손글씨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젤란드의 세계관에서 자각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유지해야 하는 '존재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첩의 거친 종이 질감을 느끼며 정갈한 손글씨로 이렇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이 짧고도 명료한 문장은 타프티가 제안하는 이중 자각의 정수이자, 매트릭스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강력한 주문이 됩니다.
저는 매일 여물봉을 산책하는 내내 이 수첩을 손에 쥐거나, 주머니 속에서 만지며 이 문장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디지털 기기의 매끄러운 화면 속 글자와는 달리, 제가 직접 꾹꾹 눌러쓴 손글씨는 저에게 훨씬 더 묵직한 존재감을 전달합니다. 산책 중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흩어질 때마다, 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수첩을 펼쳐 제가 직접 쓴 그 글자들을 눈으로 확인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이고(내부 자각), 현실이 보인다(외부 자각)." 이 선언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제 의식은 비로소 자동 프로그램의 사슬을 끊고 제가 상영하는 영화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손글씨는 뇌와 신경계에 직접적인 자극을 줍니다.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손가락 끝의 압력과 종이의 마찰을 느끼며 쓴 글자들은 제 무의식 깊숙이 박혀, 일상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도와줍니다. 여물봉의 대나무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수첩의 글귀를 한 자씩 짚어갈 때, 저는 제가 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이 아니라 이 세상을 관조하고 형성하는 주체임을 선명하게 자각합니다. 펜 끝에서 시작된 그 작은 떨림이 결국 제 현실의 진동을 바꾸는 시작점이 되는 셈입니다.
2. 내부와 외부 스크린: 당신의 주의력을 낚아채는 미끼들
타프티는 우리가 왜 자각을 잃어버리는지 그 메커니즘을 두 개의 스크린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내부 스크린이란 우리의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상영되는 걱정, 후회, 상상, 그리고 끝없는 독백들입니다. 여물봉의 고요한 숲길을 오르면서도 "내일 업무가 잘 풀릴까?"라거나 "과거의 그 선택이 옳았을까?"라는 걱정에 휩싸인다면, 저는 이미 내부 스크린이라는 늪에 낚인 물고기와 같습니다. 숲의 아름다움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머릿속의 가상 드라마에만 에너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상태를 '생각의 감옥'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외부 스크린은 우리 눈앞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자극적인 사건들입니다. 누군가의 무례한 태도, 예상치 못한 업무적 실수,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타프티는 우리가 이런 외부 스크린에 주의를 뺏기는 것을 '미끼를 덥석 문 물고기'에 비유합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낚시꾼이 이끄는 대로 사방으로 끌려다닙니다. 외부 사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사기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산책 중에 끊임없이 수첩의 문장을 읊조리며 저를 방어합니다. 내부의 소란스러운 소음과 외부의 자극적인 영상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숲의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그 뿌리는 단단히 박혀 있듯, 저 또한 손글씨 문구를 이정표 삼아 두 스크린 사이의 고요한 지점을 유지합니다. "나는 나를 본다"라는 선언은 내부 스크린으로부터 저를 분리하고, "현실이 보인다"라는 선언은 외부 스크린의 유혹으로부터 저를 보호합니다. 이 두 선언이 결합될 때 비로소 저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마주하게 됩니다.
3. 이중 자각의 중심에서 미래 시나리오를 형성하는 법
타프티가 가르쳐주는 기술의 핵심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자각하는 놀라운 균형감에 있습니다. 한쪽 눈으로는 내 안에서 일렁이는 미세한 감정의 파동을 살피고, 다른 쪽 눈으로는 밖에서 벌어지는 물리적인 사건들을 명료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물봉 대나무숲 계단을 한 칸씩 밟아 오를 때 이 훈련을 가장 치열하고 정교하게 실천합니다. 가빠오는 숨소리와 허벅지의 팽팽한 근육 통증을 느끼는 동시에, '힘들다, 여기서 멈출까?'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나약한 목소리를 한꺼번에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때 제 손에 들린 수첩에 적힌 손글씨 문장은 거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이 말을 나지막이 내뱉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계단을 오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영화 속 캐릭터'에서 순식간에 벗어나, 그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편집하는 '영사기사'의 위치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타프티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꿈속에서의 산책'입니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최면적 꿈에 취해 무력하게 끌려다니지 않고, 서슬 퍼렇게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그 꿈의 공간을 당당히 걸어 다니는 마스터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 슬퍼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그 영화 속의 비련의 주인공이라고 굳게 착각하며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첩에 정성껏 적은 단 몇 줄의 문장과 끊임없는 자각의 훈련이 있다면 우리는 매트릭스가 강요하는 시나리오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시작된 저의 자각 훈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물봉의 숲 속에서, 그리고 제 책상 앞 수첩 위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선,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였습니다.
때로는 저도 사람인지라 다시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화를 내기도 하고,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곁에 직접 쓴 수첩이 있고, 발밑에는 저를 지탱해 주는 여물봉의 흙이 있으며, 등 뒤에는 타프티의 가르침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잠에서 깨어나 관찰자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누군가가 정해준 디지털 세상의 정보에 휘둘리기보다, 자신만의 문장을 손으로 직접 종이 위에 써보시길 권합니다. 손글씨로 꾹꾹 눌러 새긴 자각의 힘은 당신을 얼간이의 잠에서 깨워줄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