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와 생각의 소용돌이에 휩쓸립니다. 어제 있었던 불쾌한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의 평온을 잠식하기도 하죠. 여사제 타프티는 우리가 이렇게 어느 한쪽 스크린에 깊이 빠져 있는 상태를 '최면'에 걸린 상태라고 말합니다. 이 최면에서 깨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기술이 바로 '이중 자각(Double Awareness)'입니다.
타프티 시리즈 4권을 정독하며 제가 깨달은 이중 자각의 정수는 '동시성'에 있습니다. 내부의 나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외부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 말은 쉽지만 실제 상황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여물봉의 흙길을 밟고, 수첩에 자각의 순간을 기록하며 이 추상적인 개념을 저만의 '신체적 습관'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여물봉에서 발견한 '자각의 닻'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생각의 원숭이를 길들이는 법: 명상과 자각의 결합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원숭이가 날뛰듯이 온갖 잡념이 쉴 새 없이 떠오르죠. 저는 챕터 2 '두 개의 스크린'을 읽으면서 이 내부 의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없애려고 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나를 옭아매곤 했습니다. "사과를 생각하지 말자"라고 다짐하면 오히려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때 저는 과거에 명상을 배우며 익혔던 소중한 지혜를 떠올렸습니다. 명상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라는 배움이었습니다. 저는 이 방법을 타프티의 기술에 차용했습니다. 쓸모없는 생각이 일어나면 즉시 "내가 지금 내부 의도에 빠졌구나"라고 인정하고 자각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각하는 것 자체도 잊어버려 다시 생각의 늪에 빠지기 일쑤였지만, 여물봉을 오르내리며 반복한 끝에 이제는 생각에 골몰할 때 얼른 빠져나올 수 있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2. 자각의 닻: 수첩 기록을 통한 의식의 고정
자각은 찰나의 순간 일어났다가 금세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상의 소음이 심해지면 자각의 상태를 유지하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수첩'이라는 물리적인 닻을 사용합니다. 여물봉 산책 중 제가 두 개의 스크린을 동시에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저는 멈춰 서서 수첩을 꺼냅니다.
"현재 시각 15:30, 여물봉 대나무숲. 나는 나 자신을 보고, 숲의 흔들림을 동시에 본다." 이 한 문장을 수첩에 적는 행위는 흩어지려는 의식을 현재 이 순간에 쾅하고 박아 넣는 마침표와 같습니다. 바인더에 정리된 챕터별 요약들과 제 일상의 자각 기록들이 쌓여갈수록, 제 이중 자각의 닻은 더욱 깊고 단단하게 내려졌습니다. 명상에서 배운 '인정하기'가 수첩이라는 도구를 통해 '물질화된 자각'으로 변모하는 순간입니다.
수첩은 제 영사기가 켜져 있음을 확인하는 모니터와 같습니다. 생각의 원숭이가 날뛰려 할 때 수첩을 펼쳐 제가 적어둔 자각의 문장들을 읽으면, 놀랍게도 요동치던 내부 스크린이 고요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타프티가 말하는 '관찰자의 자리'를 물리적으로 확보하는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이제 저는 생각에 잠기다가도 등 뒤의 미세한 감각과 함께 수첩의 존재를 떠올리며 즉시 현실의 영사실로 복귀합니다.
3. 이중 자각의 실전 적용: 여물봉에서 내려다본 세상
이중 자각의 상태가 익숙해지면 현실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고화질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그 영화가 촬영되는 현장을 보게 된 것과 같은 느낌이죠. 저는 여물봉 정상에서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저 수많은 마네킹의 행진 속에서 오직 나만이 깨어 영사기를 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묘한 전율을 느낍니다.
이중 자각이 중요한 이유는, 이 상태에서만 우리가 다음에 배울 '땋은 머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의 땋은 머리 활성화는 그저 또 다른 망상에 불과합니다. 내가 나 자신임을 알고, 현재의 스크린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의 스크린으로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제가 여물봉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제 바인더를 정독하며 "나는 나를 보고, 현실을 본다"라고 되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짜증이나 불안도 이제는 이중 자각의 훈련 도구가 됩니다. 화가 나는 순간, 저는 그 화에 함몰되지 않고 "오, 내 안에서 화라는 필름이 돌아가고 있네? 그리고 내 앞에는 화를 내게 하는 사람이 서 있군"이라며 두 스크린을 동시에 봅니다. 이 찰나의 분리가 저를 시스템의 노예에서 자유로운 창조자로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타프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자유의 서막입니다.
결론: 당신만의 여물봉에서 닻을 내리십시오
꼭 여물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당신이 매일 걷는 골목길, 혹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도 자각의 닻은 내려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두 개의 스크린 중 어느 한 곳에 낚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입니다. 원숭이처럼 날뛰는 생각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저 원숭이가 뛰노는 놀이터와 그 놀이터를 바라보는 당신 자신을 동시에 인지하십시오.
오늘도 저는 제 낡은 수첩에 오늘의 자각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이 모여 제 삶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바꿀 강력한 에너지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이중 자각은 기술이 아니라 '살아있음' 그 자체입니다. 당신의 눈이 안과 밖을 동시에 비출 때, 당신은 비로소 세상이라는 거울 앞에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등 뒤의 에너지는 이미 요동치기 시작할 것입니다.